홍대 길거리에서 고민상담하기
길에서 모르는 사람 고민을 들어보자.
소심하고 내향적인 내가 모르는 사람의 고민을 들어보기 위해 길거리로 나갔던 과정과 생각을 글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모르는 사람의 고민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든 계기는 한 문상훈(빠더너스)이라는 사람의 영상을 보고 따라하게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4시간 동안 길거리에 앉아 있었고 그 시간 중 6번의 고민 상담과 1번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처음 나간날 너무 좋은 사람들이 많이 만나서 한동안은 여운이 가시질 않았었다.
문상훈은 11년전에 길거리에서 문선배 인생 상담소 라는 컨텐츠를 진행했었고, 그 영상을 보면서 "나도 같은 나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고민을 듣고 의견을 나눠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해결책을 제시하기 보다는 공감해주고 경청해주는 모습이 인상 깊었고, INTP이지만 스스로 나름 사회화가 진행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감과 경청 정도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듣고 의견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외에도, 과거의 나였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면서 스스로도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기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했고, 그렇게 나는 홍대 길거리로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수십번의 고민
홍대 길거리에 나가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보겠다 라는 마음은 먹었지만 막상 나가는게 정말 어려웠다. 언제 나가야 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어떤 문구를 적어야 할지, 어떤 대답들을 해주어야 할지 이런 오만 생각들이 머리속을 헤집어 놓았고, 이런 생각들 때문에 막상 나가는게 두려웠다. 하루에 30마디도 안하는(카톡포함) 내가 나가서 사람들과 잘 대화 할 수 있을까? 아무도 안오면 어쩌지? 이런 스스로에 대한 의문들도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나갈 타이밍을 미루고 있었고, 이러는 나 스스로가 너무 답답하다고 느꼈다.
그러던 와중에 헬스 트레이너 선생님이랑 같이(금요일에) 운동을 하면서 내 생각을 흘리듯이 말했었고, 선생님께서 내 말을 듣고 유튜브에도 영상을 올릴 생각이 있으면 카메라를 빌려 주시겠다고 하면서, 홍대가 멀지 않으니 직접 홍대까지 와서 카메라를 전달주겠다고 했다. 나는 내 스스로 덫을 놓아버렸다. 여기서 못 나가겠다고 선생님께 말하면 스스로 뱉은 말도 못 지키는 하남자가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고, 나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했던 말을 지킬거라는 걸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왜냐면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기 떄문이다.
그렇게 전날 부랴부랴 스케치북과 유성매직을 사서 직접 홍보 문구도 작성하고 길거리 나가기 위한 준비들을 했다. 문구를 작성하는데에도 꽤나 고심을 했다. 사람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을 만한 단어와 문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게 뭔지 잘 몰랐다. 그래서 그냥 생각 나는대로 썼다. 쓰고 보니 그렇게 나쁘지는 않아서 그냥 그대로 쓰기로 했다. 사실 더 나은 문구가 생각이 안났다. 이런거 할 때는 내가 챗GPT 보다 조금 낫다고 느꼈다. 글씨체는 그냥 사람들이 간신히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만 썼다.
성장판은 닫혔지만 성장하기
나는 그렇게 토요일 주말에 가장 사람이 많은 홍대로 나가게 됐다. 그것도 사람이 가장 많을 것 같은 1시~2시 사이에 나갔다. 주말 홍대 이 두 단어는 나 같이 나이먹은 사람에겐 듣기만 해도 호흡이 가빠지고, 두통이 생기는 단어이다. 근데 나 스스로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깨고, 동시에 처음 보는 사람들과 대화해보기 위해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날씨는 적당히 춥지 않은 날로 골랐고, 밥도 든든하게 먹었다. 옷은 사람들이 거부감이 들지 않을 만한 걸로 입었다. 얼굴은... 그래도 착하게는 생겼다.
홍대에 도착하자마자 지하철역에서 부터 사람들이 미어터졌다. 심박수가 벌써부터 200이 넘어가는 것 같았다. 식은 땀도 조금씩 나고 어질어질했다. 아직 아무것도 안했는데 3일 밤을 샌 느낌이었다. "그래도 남자가 뱉은 말지 있지" 라고 되뇌이며 네이버 로드뷰로 봐두었던 장소로 갔다.
변수가 생겼다. 봐두었던 장소로 가보니 한창 플리마켓이 진행중이었다. 차마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 틈에서 고민상담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장소를 옮기기로 했다. 돌아다니다보니 적당히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는 버스킹 거리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적당히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고, 버스킹을 하지 않는 시간이라 시끄럽지도 않았다. 때마침 트레이너 선생님도 도착했다. 카페에서 간단하게 카메라 작동방법 설명을 듣고, 다시 나와 밖으로 나와 봐두었던 장소에 앉았다.
스케치북을 들고 있었는데 차마 펼칠 엄두가 안났지만, 트레이너 선생님이 지켜보고 있었다. 세상 담담한 척 하며 스케치북을 펼쳐 초딩 글씨체로 작성한 "고민 들어드립니다." "마음속 얘기 들어드립니다." 문구가 적힌 종이를 세상을 향해 펼쳐보였다.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틀을 깨고 성장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돈안 들어요","점심 뭐먹을지 같은 간단한 고민도 좋아요"
스케치북은 펼쳤고, 나 스스로를 길바닥에 던졌다. 트레이너 선생님은 카메라만 남기고 떠났다. 남은 건 나혼자 뿐이었다. 정확히는 나와 스케치북 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 스케치북을 들고 있던 30분 동안은 아주 많이 창피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비웃는 것 같았고, 글씨체를 보고 웃는 것 같았다. (근데 글씨체 보고 웃는 건 인정) 지금 생각해보니 스케치북 보고 가는 것 보다 안보고 그냥 지나가는게 더 마음이 아팠던 것 같기도하다. (이래서 무관심이 무섭다고 하는건가?)
그렇게 나는 하염없이 언제 올지도 모르는 손님(?)을 기다렸다. 30분 정도 지났을 때, 고등학생 무리가 처음으로 나에게 고민을 말해주러 왔다. 첫번째 고민은 "점심 뭐먹을지 모르겠어요 정해주세요" 였다. 나는 와줘서 너무 고맙다는 말을 속으로 삼키고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먹어본 메뉴라곤 회사 지하 1층 뷔페식 구내식당 밖에 없는 나한테 너무 어려운 고민이었다. 그렇게 생각나는 말들을 일단 뱉어보기로 했다.
학생들 : 점심 뭐먹을지 정해주세요
나 : 면 좋아해요?
학생1 : 음..면? 약간 고기도 먹고싶기도 하고..
나 : 라멘 어때요? (분명히 고기 먹고 싶다고 했는데;)
학생2 : 라멘 말고 다른거요!
나 : 쌀국수?
학생1 : 쌀국수~? 괜찮긴한데..
나 : 아니면 태국 음식중에 팟타이 라고 있는데..
학생1 : 어 나 팟타이 좋아하는데 팟타이 괜찮다.
나 : 어? 어..해결?
학생들 : 감사합니다.(우르르 팟타이 먹으러 몰려감)
얼떨결에 첫번째 고민을 해결당해 버렸다. 누군가와 대화할 수 있다는게 이렇게 기쁜 일인지 처음 알았다. 혼자 뻘쭘하게 앉아 있던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 준 것 만으로도 너무 고마웠다. 그렇게 고민을 해결당해버리고 떠나던 와중에 학생중 1명이 다시 돌아와 나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학생 : 혹시 유튜브도 하세요?
나 : 아니요 아직 안하는데 시작 할 것 같아요.
학생 : 아 진짜요? 성공하실 것 같아요
나 : 어 너무 고마워요
학생 : (팟타이 먹으러감)
몇초 정도, 짧게 나누었던 대화 만으로도 내가 오늘 나와야 했던 목적들이 달성된 기분이었다. 처음 와주었던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고, 다음에 혹시라도 만나게 되면 팟타이라도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한번 해보고 나니 그 이후로는 스케치북을 들고 있는게 조금씩 편해졌다. 누가 쳐다보면 오히려 스케치북을 들고 흔들고 있었다. 항상 처음이 어려운 것 같다고 느꼈다. 스스로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나 고정관념, 생각들을 깨기위해서는 처음이 정말 어렵다. 그 처음만 잘 넘기면 다음부터는 처음 만큼은 어렵지 않았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 이후로 5번 정도 고민상담을 했고 정말 좋은 사람들과 재밌게 대화를 했다. 나간게 후회되지 않고 다음에 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고민상담의 내용이 길어서 전부 작성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받았던 고민들만 정리해보았다.
"스터디 카페에 갔는데 8시간 중에 3시간만 공부하고 5시간은 놀기만 해요", "하고 싶은게 있는데 주변환경 때문에 조금 어렵습니다.","미대 입시를 준비하는데 다른 친구들이 너무 잘해요" 처럼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고민들을 주제로 얘기를 나눴고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공감과 내가 가진 생각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인터뷰라는 재밌고도 특이한 경험을 했다. 남녀두분이 오시더니 본인들을 소개하면서 "호후"라는 홍대 인터뷰 동아리(?)라고 본인들을 소개했다. 나를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인스타그램 계정에 게시하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서 인터뷰를 바로 하기로 했다. 간단한 질문들을 서로 주고 받고 난 후 마지막 질문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나는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라고 대답 했다. 인터뷰 내용도 너무 길어서 생략하고 게시글 링크로 대체
게시글 링크
https://www.instagram.com/p/DF71EdkhDQT/?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MzRlODBiNWF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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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instagram.com/p/DF71XxYBBZZ/?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MzRlODBiNWFlZA==
용기 내길 잘했다
집에 오면서든 생각이 있다. "용기 내길 잘했다." 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성장한 것 같았고,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틀을 깨고 나왔다는 사실이 뿌듯하기도 했다. 느낀점이 정말 많아서 글로도 다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물론 길바닥 한번 나가서 인생이 드라마틱 하게 바뀔거라고 생각은 안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런걸 왜 하냐?"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냐?"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에 나도 상당히 동의한다. 왜냐면 3살 정도만 어렸다면 나도 저렇게 생각했을 것 같기 떄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문상훈 아저씨처럼 다른 사람의 시선같은 건 신경쓰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걸 하면서 스스로 성장해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말 멋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따라했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 같은 걸 신경쓰고 살기엔 인생은 너무 짧다는 걸 느꼈다.
어쩌면 길거리에는 생각보다 많은 기회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떤 사람은 길거리에 주차된 고급 외제차 차주의 연락처로 전화해 "사업과 일을 배우고 싶습니다" 라고 연락해 실제로 그 차주 밑에서 일을 배우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이 얘기가 진짜 일지는 모르지만 나에게는 꽤 인상 깊게 남아있다. 누군가에게 욕먹을 각오와 용기가 멋있고, 간절함이 묻어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도 영향을 받아서 개발자 취업준비 당시 내 이력서를 인쇄물로 뽑아 강남역에서 돌려보려고 했는데, 욕먹을 각오가 덜 됐는지 차마 사람들에게 말을 걸지는 못해서 그냥 돌아왔던 적도 있다. 인쇄물을 100장이나 뽑았는데 아직 못 버려서 방구석에 쌓여있다.
앞으로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있다.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서 내가 가진 생각이나 고정관념을 깨고 좀 더 멀고 깊게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까지는 내가 가둔 생각 안에서만 말하고 행동했지만 그걸 깨고 나온후에 느꼈던 경험들이 내 인생들 조금씩 바꿀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에게 오는 기회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